'종말주의자 고희망' 을 읽고: 죽는 건 슬프지만 딱 하나 기대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우연히 '종말주의자 고희망'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 들어가서 읽을 책을 찾다가 추천에 뜬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대출했는데, 잔잔하면서도 재밌고 따뜻하고 몇 번에 걸쳐 심금을 울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어요. 이렇게 마음이 먹먹하게 달아오르는 책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청소년소설을 정말 좋아했는데,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닌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에는 다른 연배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특유의 질감이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물기 어린 것 같기도 하고, 또 까슬까슬한 것 같기도 하고, 단맛이 날 것 같기도, 색종이를 먹을 때 나는 씁쓸한 맛이 날 것 같기도 한 것이요. 그 고유한 어떤 느낌이 청소년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고 책들이 자기들끼리 결집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책의 주인공 이름은 '고희망' 입니다. 희망이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고, 희망이를 둘러싼 것들은 독자였던 저에게도 익숙하고 친근한 것이었지만 정작 희망이 자체는 여느 중학생들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생각이 많은,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는 특별한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망이는 '종말' 에 대한 소설을 씁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역시 사랑스러운 인물인 '지수' 의 추천으로, 소설을 올리는 사이트에 자기가 쓴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희망이가 쓴 글과 희망이의 삶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희망이의 소설과 나레이션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는 점이 이 책의 아주 큰 묘미입니다.
희망이가 쓰는 소설에서 '종말' 은, 처음에는 하루아침에 모두가 사라져 버리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인공 H와 친구 D는 눈물을 흘렸다는 게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으리라고 추정하지요. '종말' 에서 살아남은 13~16세 아이들은 '홈' 이라는 곳에 모여 오순도순 함께 지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아무 빈집에 들어가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종말' 이 또다시 시작되고, 이제는 홈에서 함께 지내던 아이들이 한 명씩, 랜덤한 어느 한 순간에 스르륵, 사라지고 맙니다. 시간이 흘러 H의 주위에 있던 친구 J와 D가 사라지고, H는 그들을 따라 종말을 맞고 싶어 억지로 울지 않고 일주일간 버티는 등 애를 쓰지만, 종말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H는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홈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D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맨 마지막에 덧붙여진 외전에는 종말에서 살아남은 뒤 홈에 온 새로운 아이가 쓴 글이 나오는데, 그 글에 H가 자살을 하지 않고 결국 더 살았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신기해 하며 애벌레를 바라보다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희망이는 죽음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그리고 삶에 대한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희망이는 이 책의 마지막에 유서를 적는데, 그 대목에선 희망이가 자기 인생과 자기 글로써 끝내 얻은 것이, 그리고 희망이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죽는 건 슬프지만 딱 하나 기대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세상으로 가면 소망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무섭지만은 않아요. 사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 거잖아요. 종말이라는 건 누구나 피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종말이 올 때까지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때까지 우리는 살아 있는 거니까요.
저에게 정말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